이왕 살 거면 예쁘게 살자.
카페인을 마시지 못하는 나에게도 자주 찾는 카페가 있다.
망원동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 위치한 그 카페는 온통 화이트톤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따뜻했고 그 온기가 2년이라는 시간 동안 나의 발길을 붙잡았다.
주말 오후 느지막이 카페를 찾아가면 "아직 식사 전이죠?"라며 삶은 감자 위에 연유를 뿌려주는 사람. 이 사람에게는 어떤 질문을 던져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건 바로 그때였을까?
평온함과 긍정의 기운이 서려있는 그의 얼굴에서 나는 행복을 읽었다.
집이 박산씨를 닮았어요. 따뜻하고 포근하고 깔끔하고...
특히 가구들이 무척이나 탐나네요. 원래부터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았나요?
포괄적으로 아름답고 예쁘고 멋진 것들에 관심이 많았어요. 여우처럼 옷과 소품을 좋아하다 보니 다양한 소품들을 구매하게 되었고,
어디에 두면 좋을까 고민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인테리어에 관심이 생긴 것 같아요. 눈에 잘 띄는 물건들을 주로 사다 보니 오히려 각각의 개성이 다 묻혀버리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게 참 슬프고 아이러니했죠. 점점 먼지만 쌓이고 전체적으로 어울리지 못한다고 느꼈을 때 비로소 실용적이고 눈이 오래 머무를 수 있는 것들에 관심이 갔어요.
점점 더 깐깐해지고 있습니다.
집이 박산씨를 닮았어요. 따뜻하고 포근하고 깔끔하고...
특히 가구들이 무척이나 탐나네요. 원래부터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았나요?
확고한 편이라기보다는 자주 변해요. 자연스럽게 타협하기도 하고요. 때에 따라, 유행에 따라, 그리고 상황에 따라 많이 바뀌었죠.
그래서 물건을 많이 사고 버리기도 했어요. 지금도 그렇고요. 고등학교 때 알바로 용돈을 벌어 빅뱅이 입는 옷의 브랜드의 제품을 착용하곤 했어요.
월급날 즐겨찾기에 넣어둔 품목들을 다 사버리고 다음날 통장에는 천 원 밖에 안 남아 있고.
그 당시 닥터드레 헤드폰이나 아디다스 제레미스캇, MCM 가방 등을 구매해서 친구들과 홍대 주변을 누비며 '힙합퍼'나 '무신사'에 찍히려고 했죠. (웃음)
(웃음) 그래서 수확은 좀 있으셨나요?
아뇨. 규모가 비교적 작았던 패션 사이트에는 올라갔지만 창피하니까 말은 안 할래요.
계절에도 맞지 않는 '멋'만을 추구하는 옷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더위와 추위를 우악스럽게 피해 친구들과 편의점에 들어가 휴식하곤 했어요.
그리고 또 돌아다니다 보면 저희 같은 애들이 은행나무 열매처럼 우수수 쏟아져 돌아다니는 걸 보고 긴장감도 느끼곤 했죠. 동물의 왕국이 따로 없었어요. (웃음)
박산씨는 집돌이 인가요? 제가 만약 이런 집에서 살고 있다면 더욱 밖에 나가지 않을 것 같은데.
네. 집돌이가 맞습니다. 보통 카페 마감을 하고 5분 거리에 위치한 집으로 돌아가요. 카페와 집이 가깝다 보니 쌍둥이에게 이쁜 옷을 입혀주고 싶은 엄마처럼 같은 것을 두 개씩 사기도 해요.
가까운 만큼 집과 카페 인테리어 연동도 쉬워요. 야밤에 큰 가구들을 들고 다니기도 하고요. (웃음) 그렇게 이고 지고 집으로 또는 카페로 새로운 아이템들을 옮기며 주기적으로 바꾸려고 노력해요.
질리지 않게 공간을 계속 바꾸다 보면 더욱 애착이 가요. 항상 한자리에 머물던 물건들의 배열을 바꾸면 예기치 못하게 환상의 조합도 발견하고 하나의 전시처럼 조영한 접점들이 생겨서 생각을 윤활시켜 주더라고요.
그래서 집이나 카페 밖으로 잘 안 나가나 봐요! 또 이왕 사는 김에 이쁘고 편하게 살기를 원해요. 제 애정이 듬뿍 들어있는 집과 카페가 주는 무한한 평온함을 잘 만끽하는 편입니다.
이건 이불보에요. 이불을 둘 곳이 없어서 암체어에 덮어 소파처럼 만든거에요. 이 것도 어떻게 보면 편하고, 이쁘고... 환상의 조합이죠.

언제부터 자취를 시작하셨나요? 뭔가 엄청 설렜을 것 같아요.
이제 내 세상이다!라면서 실없이 웃고 다녔을 것 같은 느낌?
24살 9월부터 였어요. 지금 제가 28살이니까 4년은 안됐네요.
자취라는 로망에 욕심이 컸고, 본가인 인천이 작다고 느꼈어요. 서울로 나와서 제가 늘 하는 추상적인 생각들을 차곡차곡 실현한다면 큰 사람이 될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실제로 친구들을 많이 초대하기도 했고 엄청난 인테리어 욕심이 있어서 과시적이기도 했어요.
맥시멀리즘이었죠. 코딱지만 한 집을 먼지 소굴로 만든 거에요.
저 많은 인형들은 다 어디 갔나요?
버리거나 팔지 않고 다 나눠줬어요. 인형이 점점 많아지니까 본질적인 것에 대한 질문이 들더라고요. 소유욕이란 무엇일까...
보고 싶을 때 보고 만지고 싶을 때 만지고 싶은데 막상 갖고 보니 감흥이 사라졌어요.
그래서 친구들에게 모두 나눠줬습니다. 물건들이 그리워질 때 보러 갈 수 있도록 말이에요.
집 꾸밀 때 가장 신경 쓴 부분이 무엇인지 궁금해요.
물론 박산씨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겠지만요.
요즘은 눈이 편하고 실용적인 것들에 더 애착이 가더라고요. 저는 집에서 다이닝 테이블이 제일 좋아요.
친구들과 도란도란 수다를 떨며 맛있는 음식을 먹은 추억이 서려 있기도 하고 직접 고안해서 만들었는데, 대만족을 거둔 테이블이기도 하고요.
그만큼 많은 신경을 썼고 대부분의 시간을 이곳에서 보내요.
선반 같은 것들도 다 제가 직접 만들었어요. 타일도 다 직접 붙였구요.
바닥 타일, 벽 타일 다 붙이는데 두 달 정도 걸린 것 같아요. 퇴근하고 매일 밤 작업하느라 잠을 못 잤어요.
유튜브를 보니 이런 말을 하셨더라고요.
"혼자 살면 자신과의 타협을 많이 해서 그만큼 철칙도 필요하게 되었습니다."라는 말이요.
굉장히 기억에 남아서 적어 두었어요. 어떤 철칙이 있는지 궁금해요.
본능적인 나와 타협하면 사회적인 사람이 될 수 없는 원리인 것 같아요.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집에 들어가면 모든 것을 벗어던지고 방치해 버리곤 하잖아요.
하지만 그런 혼자만의 생활을 하다 보면 마지막에 벗어던진 옷가지들을 치우는 것도, 그 일을 하는 어마어마한 시간의 주인도 결국 '나'이더라고요. 그래서 철칙이 중요한 것 같아요.
음... 나열하자면 집에 들어와 옷 주머니에 든 물건들을 모두 정리함에 넣어요. 그리고 입었던 옷을 잘 정돈해 놓습니다. 이정도만 해도 집은 확실히 덜 어질러져요.
아 참, 가장 중요한 버리기 습관도요. 어떤 옷을 2년간 입지 않았다면 버려야 합니다. 그다음에도 입을 일이 없고 막상 버리면 생각도 안 나고 후회하기보단 후련하거든요.
물건이 자기 자리에 없다면 왜 없는지 생각을 해봐야해요. 그리고 원래 자리를 찾아주거나 버려야 하고요. 물건은 있어야 할 곳에 있어야 더 쓰게되고 다 쓴 다음에 버릴 때에도 후련하고 새로운 것으로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생기거든요.
샀던 것을 잊고 또 사고 도 사게 되다가 나중에는 너무나도 쉽게 낭비하는 제 자신이 미워져요.
마치 쌓여버린 투명 우산처럼요. (저도 우산 많아요.)
정리와 버리기. 꼭 집이 아닌 인간관계에도 필요한 것 같아요.
방금 말씀해 주신 철칙을 다른 곳에도 적용하고 계시나요?
저 같은 경우 물건은 잘 버리는데, 사람은 잘 못버리는 것 같아요.
카페를 차리려고 마음을 먹었을 당시가 생각나요. 사람을 만나고 시간을 소비하다 보면 돈이 나가기 마련이잖아요.
그래서 저는 저를 시간과 사람을 잠깐 놔두고 일과 적금을 선택했습니다. 괴로웠어요. 저에게 연락을 주는 고마운 분들의 부름과 경조사에도 찾아가지 못할 만큼 저를 꽉 매고 다녔어요.
그러면서 하나의 바람이 생겼죠. "나중에 짠! 하고 나타나서 사과하고 핑계 없는 용서를 구해야지" 지금은 이루어 졌습니다. (웃음)
사람을 만나는 것은 꼭 목적지가 다른 산행 같아요. 잠시 동행을 하다 어느새 물리적 또는 정신적으로 멀어지고,
노력이 없다면 서로 교감이 부족해지기 마련이잖아요. 그리고 촌스럽게 누구의 잘못인지 따지게 되는 것도... (웃음
저마다 정해놓은 정상이 있기 때문에 안부 정도만 묻는 사이가 될지라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요?
카페를 하기 전에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에 종사하셨던 걸로 알고 있어요.
어쩌다 카페를 차리게 되었나요?
스무 살 때 카페에서 일하는 게 너무 편하고 멋져 보였어요. 그리고 저는 더 큰 사람이 될 것 같은 이상한 자신감이 있었거든요.
'잠깐 알바만 하다 큰 사람이 되어야지!'라는 오만함으로 카페 일을 시작했고 좋은 스승들을 만나 커피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변했어요.
같이 일했던 형, 누나들이 가장 큰 스승님들이에요. 저를 귀엽게 봐주시면서도 엄하게 가르쳐 주셨거든요. 바리스타 자격증이 있어야 샷을 내릴 수 있어서 저는 보조 역할만 했어요.
그래도 당시 바리스타 형, 누나들이 제게 기회를 서슴없이 주셨어요. 판매는 안 했지만 직원 모두에게 원두를 마음껏 쓰게 해주셨고 시험을 치르기 전 날이면 새벽에도 커페 머신들을 사용할 수 있게끔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셨어요.
밤이 되면 자주 카페 사람들과 불 하나 키고 테이블에 둘러앉아 와인을 마시며 보드게임을 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너무 꿈만 같은 나날들이네요.
군대 다녀오고 1년 정도는 소품 가게에서 일을 하다가 다시 친숙한 커피 쪽으로 회기를 했습니다. 16년 말쯤부터 카페에서 주 6일 바리스타 직원으로 일하고 밤 11시부터 새벽 4-5시까지 닭강정 집에서 닭을 튀겼어요.
주말에는 파트타이머 바리스타로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일을 다니며 무리하게 돈을 모았죠. 틈틈이 제가 그린 그림을 옷과 에코백으로 제작해서 팔기도 했습니다.
쉬는 날은 없었어요. 다만 토요일이 유일하게 닭 튀기는 알바만 있는 날이었죠.
그렇게 일하면서 저축하고 저만의 카페를 운영하는 시뮬레이션을 계속 돌리면서 차린 곳이 바로 트랙26입니다.
앞에서도 큰 사람이라는 단어를 언급해 주셨는데요.
박산씨가 생각하는 큰 사람이란 무엇인가요? 돈? 명예? 성공? 사랑? 이런 것들과 관련이 있을까요?
군대 가기 전과 군대를 다녀온 후 생각이 달라요.
입대하기 전에는 음악을 하고 싶었는데 제대하고 나서는 월세랑, 생활비를 벌어야 해서 그에 상응하는 수입을 얻기 위해 안정적인 선택을 한 것 같습니다.
과거에는 연예인 같은 대중적으로 알려진 사람들이 큰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냥 이해심이 많은 사람이 큰 사람인 것 같아요.
저는 지금 삶에 너무 만족하고 있고 이미 꿈속에 살고 있습니다.
카페 이외에도 개인 작업을 하고 계신데, 그림부터 석고 작업까지 분야가 넓어요.
손으로 직접 그리고 만드는 것을 굉장히 좋아하시는 것 같기도 하고요.
마음에 드는 물건을 구매해서 공간을 채우는 것도 좋지만 자신이 직접 만든 것들로 채우는 것과는 또 다른 기분이 들 것 같아요.
맞아요. 카페 앞에도 쓰여있지만 여긴 카페이면서 동시에 저를 포함한 여러 사람들의 작업실이기도 합니다.
손님들이 카페에 놓인 제 작품들을 유심히 봐주실 때 짜릿해요. (사실 제가 그린 지도 모르시는 분들이 많아요.)
손님들과 저 사이에 어떤 접점이 생기는 것, 제가 투자한 노력과 시간 그리고 그 가치를 알아주시는 사람들이 이 공간에 있다는 사실이 참 뿌듯하더라고요.
신기하게도 트랙26에 오는 손님들 중 작가분들이 많아요. 그분들이 저에게 타당한 용기를 심어주셨죠.
덕분에 자신감과 행동력이 생겨서 꾸준히 해나가고 있습니다.
작가 박산과, 트랙26의 미래가 궁금해요.
앞으로 일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 있으신가요?
작가 박산으로써는 2020년 올해 더 많은 작품을 만들고 정리하는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트랙26은 누군가의 배경 같은 존재에요.
적당한 테이블 사이의 간격, 작업하기 편하고 무언가를 먹기 편한 높이의 테이블과 의자, 시선을 방해하지 않는 물건들의 앙상블, 평안하지만 기분 좋은 긴장감이 있는 곳이라고 생각해요.
테이블마다 꽃이 놓여 있어요. 이 꽃의 의미는 이 계절에만 볼 수 있는 꽃이니 지금을 음미해 달라는 거죠. 그리고 행동에 적당한 긴장감을 불어넣어 드리기도 하고요.
근데 오시자마자 꽃이 불편하신지 다른 테이블로 치우시는 분들이 계신데, 그러면 제가 마음이 조금 아파요.
수평에는 안정적인 자유, 곡선에는 낯익은 질서가 서려있답니다. 그런 자유로움과 질서, 젊은 기가 넘치는 곳으로 나아가려고 합니다.
말보다 공간으로 보여드릴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