넉넉하게 산다는 것

넉넉하게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넉넉하다는 '살림살이가 모자라지 않고 여유가 있다'라는 사전적 의미를 갖고 있다.

약 9년이란 시간 동안 서울에 혼자 살면서 한 번도 살림살이가 넉넉해본 적이 없는 나는 이제 무언가를 대신할 방법을 찾거나 버리는 일에 능숙해져 버렸다.

굳이 말하자면 넉넉하기보단 팍팍했다 해야할까? 나보다 1년 먼저 서울 살이를 시작한 그를 만나고 넉넉하다의 또 다른 의미를 배울 수 있었다.

'마음이 넓고 여유가 있다' 그렇다. 사고에서 나오는 마음이 아닌 본능에서 나오는 바다처럼 넓고 깊은 그의 마음이 나를 조금 부끄럽게 만들었다. 

안녕하세요.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공유 오피스 WeWork에서 일하고 있는 평범한 직장인입니다.

고향은 전주고 서울에 온 지는 이제 딱 10년 정도 되었습니다. 그 10년 중 4년은 이태원에서 보냈네요. 

어쩌다 보광동으로 오게 되셨나요? 

대학 졸업을 앞두고 한창 거처할 곳을 알아보고 있을 때 친하게 지냈던 대학 동기 형이 이태원이 저렴하고 집도 크다고 추천해 줘서 이태원역 주변을 알아보게 되었어요.

역에서 조금 걸으면 나오는 정겨운 동네 보광동을 그때 우연히 알게 되었죠. 생각보다 저렴한 월세랑 큰 방이 마음에 들어서 이 동네에 오게 되었습니다.

총 두 번의 이사를 한 뒤 지금 사는 이 곳으로 오게 됐네요. (첫 집은 보증금 300에 월세 30, 상가 원룸에서 시작했죠.)

왜 계속 이 근처에 계신 건가요? 

가격적인 부분이 가장 컸어요.

그리고 동네 자체에 익숙해지다 보니 계속 머물게 된 것 같아요. 

옥탑방은 처음이에요. 왜 다들 옥탑방에 대한 로망이 있잖아요.

드라마나 영화에서 많이 나오기도 하고요. 서울 상경해서 옥탑방에 자리 잡고 살아가는 그런 이야기들 말이에요.

저도 서울살이 하면서 옥탑방에 한 번쯤은 살아보고 싶었거든요. 옥탑방에 살아보니 어때요? 

사실 바로 이전에 살던 집은 지층이라 햇빛이 많이 부족했어요.

말이 지층이지 거의 반지하 같은 구조로 되어 있어서 오죽했으면 방에 빨래를 말리는데 속으로 '쨍한 햇볓에 빨래 말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을까 싶어요.

그래서 옥탑방까지는 아니더라도 햇볕이 잘 드는 집으로 이사를 가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이 집의 마당을 보는 순간 '아! 여기다!'싶어 바로 계약하기로 했죠. 

옥탑방 하면 겨울에는 춥고, 여름에는 덥다는 인식이 강한데 사실 저희 집 구조는 옥탑방이라기보다 3층 꼭대기 집 마당이 넓은 구조로 되어있는 특이한 집이에요.

그래서 그런지 에어컨과 보일러기로 여름과 겨울을 나름 잘 버티고 있습니다. 결론은 아주 살기 좋아요. (웃음)

WeWork에서는 어떤 일을 주로 하시나요? 

저는 커뮤니티 매니저로 일을 하고 있어요. 아무래도 공유 오피스이다 보니 고객 관리를 주로 하고 있는데요.

예를 들면 입주를 희망하시는 분들에게 투어를 제공하거나 또는 입주하신 분들이 불편함을 겪고 계시진 않는지 파악하고 회계 같은 행정 업무, 입주자 네트워킹 이벤트도 기획하는 등 다양한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평소 집에 지인들을 많이 초대하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커피, 음악, 레고 등 모두 혼자 할 수 있는 것들인데 보고 있으면 항상 누군가와 함께 나누고 계시더라고요.

사람들과 같이 하는 것을 원래 좋아하시나요? 아니면 외로워서...?

저도 어떠한 계기로 친구들을 초대하게 되었는지 잘 모르겠어요. 집이라는 공간을 어렸을 때 떠올려 보면 동네 친구들이 편하게 드나드는 곳이었어요.

그리고 저 또한 친구네 집 문을 두드리며 "ㅇㅇ친구에요~"라고 외쳤던 기억이 생생해요. 그만큼 가족들이 환대해 주고 환대 받고 했었죠.

하지만 어른이 되고 혼자 살면서 친구네 집에 쉽게 가본 경험이 극히 줄어드는 게 좀 의아했어요.

어쩌면 집이라는 공간이 예전과는 다르게 물리적으로 좁아지고 심리적으로는 더 단절돼서 그런 게 아닐까 싶어요. 


기본적으로 저는 '사람'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 다양한 분야에 대해 이야기하고 생각을 공유하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에요.

집에 누군가를 초대했을 때 "참 너답다"라는 말을 들을 때면 괜스레 기분이 좋아지고, 제가 좋아하는 무언가를 나눌 때 상대방이 좋아해 주는 모습만 봐도 뿌듯함을 많이 느껴요.

아무래도 그런 부분이 제가 저희 집에 다양한 분들을 모시는 이유이기도 한 것 같아요. 

나만의 공간인 집에 사람들을 초대하는 게 부끄럽지는 않으신가요?

저는 꽁꽁 숨겨놓은 비밀상자를 들켜버린 기분이 들더라고요. 뭔가 어색하기도 하고요. 

늘 누군가를 초대하고 난 뒤 후회하곤 해요. 바로 청소 때문이죠. 하지만 뒤늦게 오는 뿌듯함도 있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조금 부끄러웠어요. 무든 대단한 집에 사는 것도 아니고, 세련되거나 고급스러운 집도 아니라 초대를 망설여지게 된 경우도 있죠.

하지만 그럴 때마다 좋은 집이 많긴 하지만 '그래도 내 집도 나쁘지 않아'라는 생각으로 극복하게 된 것 같아요.

아무래도 이럴 때 근거 없는 자신감이 꽤나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찬빈씨는 보면 가만히 있지 않는 사람인 것 같아요. 

노래를 부르고, 자전거를 타고, 커피를 내리고, 책을 읽고, 사진을 찍고... 원래부터 활동적이었나요?

어떤 것들이 찬빈씨의 성향에 영향을 끼쳤는지도 궁금해요. 

제 생각에는 지금 하고 있는 취미들은 모두 10대 때 시작했던 것 같아요. 초등학생 때 살던 집이 바로 초등학교 건너편에 위치해 있었어요.

그래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매일 축구하고 나가 놀다가 어머니가 창문을 열고 저를 부르며 저녁 먹으로 오라고 한 게 일상이었죠.

딱하나 저에게 제약이 있었다면 '밥은 꼭 집에서 먹는다'는 것이었어요. 그 부분 빼고는 어릴 때부터 부모님께서 저에게 굉장히 많은 자율성을 주셨었죠.

그 범위 안에서 최대한 제가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 즐기는 것에 마음껏 몰두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커피, 라이딩, 레고, 사진 등 찬빈씨가 좋아하는 것들 중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게 있으신가요?

뭔가 난 여기까지 해봤어!라고 자랑할 수 있을 만한 것들이 있을 것 같아요.

쉽게 말하자면 '부심'같은 것들이요. 

항상 여러 개에 두루두루 관심을 갖다 보면 '하나라도 잘 해야 하는데'라는 아쉬움을 갖는데 그게 바로 저인 것 같아요.

가장 애착이 가는 것은 바로 '사진'이에요. 잘 찍지도, 잘 알지도 못하지만 고등학교 시절 첫 해외 수학여행을 간다는 핑계로 DSLR 카메라를 아버지께 조르고 졸라 선물 받게 되었어요.

당시 학교에서는 DSLR 카메라를 가지고 있는 게 전교에서 저 혼자뿐이라 우연히 학교 편집부 사진 기자로 활동하게 되었죠.

그때부터 사진으로 일상을 담는 게 취미가 되었어요. 근데 막상 대학에 올라와보니 제가 가진 카메라가 가장 올드한 모델이었고 수준급 카메라를 가진 친구들이 넘쳐났죠.

그 뒤로 '사진은 장비가 중요한 게 아니라 시선과 마음이 중요한 거야'라며 혼자만의 철학을 가지고 핸드폰이나 아르바이트해서 모은 돈으로 산 RICOH GR 카메라로 저 나름의 좋은 사진을 많이 담았어요.

'부심'까지는 아니지만 고등학생 때 편집부 사진 기자로 활동했던 것이 너 나름의 소소한 '부심'이 아닐까 싶네요.

요즘은 취향을 갖는 게 참으로 어렵고도 쉽게 느껴져요.

정사각형이라는 틀에 맞게 사진을 찍어 올리면 그게 곧 그 사람이 되어버리니까요.

저는 자주 노출되는 것들에 반감을 느끼는 성향을 갖고 있어서 다른 사람들의 포스트를 보면 의심 먼저 하거든요.

진짜일까?라고 말이에요. 하지만 찬빈씨는 하나를 시작하면 정말 쭉-오래 깊이 하시는 것 같아요.

애정도 느껴지고 말이에요. 그래서 아, 이 사람은 진짜구나 생각했어요. 

사실 취향을 정의하고 기준을 세워나가는 게 점점 더 어려운 시대이긴 하지만, 요즘만큼 다양하게 내 취향을 보여줄 수 있던 시대는 없었던 것 같아요.

'이렇게 해도 되나?'싶을 정도로 고집 있고 꾸준하게 제 색깔을 나타내고 있는데 어쩌면 제가 '기준 없이' 해왔던 일종의 기록들이 쌓여 저를 만들어 준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생각하는 취향은 무언가 생각하고, 계획하고, 실행하는 과정보다 최대한 의식 없이 직관적으로 나타날 때가 많아요.

그러다 보니 깊이도 얕고 빈틈투성이긴 한데 고칠 생각은 딱히 없어요. 왜냐하면 그게 저의 모습이니까 그런 것 같아요. 

이 집에 꽤 오래 살고 계신 걸로 알고 있어요.

만약 이 동네를 떠난다면 어디로 가고 싶으세요?

그리고 새로운 집은 어떻게 꾸미고 싶으신지도요. 

오래전부터 제가 살고 싶은 집은 창문에 나무가 보이는 집이었어요. 근처에는 공원이나 산도 있어서 자주 산책을 하기 좋은 곳을 찾았죠.

최근에 관심 있게 보는 동네는 '정릉'이에요. 서울 중심에서도 많이 멀지 않고 교통도 잘되어 있는 데다가 자연이 펼쳐진 동네라 매력적이라고 느껴졌어요.

새로운 집에는 지금 물건들을 그대로 가져가고 더 줄여나갈 것 같아요. 사실 저희 집에 있는 물건들이 대부분 어디서 받아왔거나, 주어왔거나 하는 것들이 많긴 한데

그런 아이들은 조금 줄여내고 정말 필요한 것들로만 채우고 싶어요. 그런 날이 곧 오겠죠?